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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의 현재(Present)는

    나라를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희생하신 분들이 물려주신 선물(Present)입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목숨 걸고 6.25전쟁에 참전하신 참전용사 '이경주' 님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원본을 볼 수 있습니다. 

    Photographer

    Lee Kyoung Ju

    국가유공자 이경주 님은

    - 1930년 11월 12일(93세) 전남 담양 봉산면 출생.

    - 19세 경찰학교 입학

    - 20세  6.25전쟁 발발.

    - 6.25전쟁 당시 장성경찰서 근무하던 중 비상소집 명령에 따라 지리산, 낙동강까지 올라가 전투를 치렀다. 

     

    내가 장성경찰서에 있을때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서울에 있는 어린 동생들(당시 국민학교) 생각이 났다. 그때 북한군이 김제까지 밀려 내려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내가 전쟁에 나가는 것보다 더 걱정이 됐다.

     

    지리산 쪽으로는 공산당(북한군)들이 많아 동료들과 직접 잡기도 해서 훈장도 많이 받았다. 공산당을 잡은 사람이지만 맨정신으로는 못 잡았다. 전투를 할때면 독할 술을 마셔야 싸울 용기도 생기고 무서움도 없어지고 그랬다. 후퇴를 할수도 없었다. 지금 동료들은 거의 다 죽고 한 사람 살아있는데, 골병이 들어 병원에 있다. 오래 살고보니 국가유공자라고 나라에서 돈도 주고, 아프면 병원가게 해주지만 무슨 소용 있나. 불구자가 되어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많다.

     

    6.25는 비참한 민족 싸움이다. 나는 전쟁터에 나갔다가 이곳(담양)에 왔을때 우리집 종들이 살겠다고 공산당들에게 어머니, 아버지를 고발해서 경찰서에서 고문을 엄청 당하셨었다. 죽지 않고 돌아오셨던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이웃끼리 서로 밀고하고 복수심을 유발해서 죽게 만들었다. 그때 그런 일이 정말 많았다.

     

    다시는 6.25 같은 전쟁이 있으면 안된다. 애먼 사람이 죽는다. 젊은 학생들, 청년들. 역사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우리가 증거, 증인이다. 잊어버리면 안된다.  

     

    며칠 전 뉴스에 아프간 사람들이 들어온다는데, 우리나라를 도왔던 사람들 도와주는 거 참 잘하는 일이다. 전쟁통에 있어봐서 안다. 기억해라! 

    <2021년 8월 26일 이경주님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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